탈과복식 사적지 는찾아오시길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홈사이트맵영문중문일문
수영민속보존회
인사말
연혁
전통예술대학
수영문화의 사적
활동실적
포토&영상
찾아오시는길
 
25의용단 HOME > 수영민속보존회 > 수영문화의 사적 > 25의용단  
01. 수영성 남문  02. 25의용사 03. 좌수영수사 선정비 04. 안용복장군 사당  
05. 최한복 선생 수영팔경비 06. 수영동 곰솔나무 07. 수영동 푸조나무 08. 송씨할매당
09. 수영사적원 10. 수영민속예술관 11. 수영성 성지 12. 최영장군 사당 13. 조씨 할배당
14. 공영주차장
 
25의용사
의용사
 
임진왜란 발발후 경상좌수사가 수영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왜군이 이곳에 주둔하며 주민을 약탈, 살육하자 이를 보다 못한 성민이 죽기를 각오하고 7년 동안 유격전을 펼쳐 적에 대항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확인이 되는 25분의 의용을 찾아내어 그들의 후손에게 군역을 면해주고 집집마다 ‘의용’이란 푯말을 붙여 충절을 기렸다.
 
의용사
 
의용사
 
 
비문
 
옛사람이 이르기를 “세상이 평온하면 공(公)도 되고 경(卿)도 되지만 세상 변란이 일어나면 뱀도 되고 돼지도 되고 표범도 되고 올빼미도 되는 것이 열에 여덟 아홉이다”라 하였다. 옛날 선조 임진년에 섬 오랑캐의 병란을 당하여 동래성이 먼저 적봉을 받아 동래부와 부산진이 차례로 함몰할 때 절의로 순사한 사람은 사서에 기재되어 밝기가 해와 별과 같으나, 다만 이곳 수영의 영장은 싸움에 죽지 않으므로 협박에 그 가령(假令 - 왜적의 명령)을 따르며 왜인의 옷을 입고 왜인의 말을 하게 된 것은 진실로 괴이할 바가 없다. 비록 이러한 사람 중에서 충의를 분발하여 적을 무찔렀다 하더라도 그 사적이 인멸되어 전해지지 않으니 심히 개탄스럽고 애석하다.

(중략)

아아! 이 수영은 남쪽 변방의 목구멍이요, 경상좌도의 요충지이다. 제단을 쌓아 제사를 지내고 비석을 세워 기록한 것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어 뒷사람에게 권려하기 위한 것이니 어찌 한갓 보기만 하고 입을 다물고만 있겠는가. 이제 의용단을 쌓고 25인의 비를 세우니 장산의 양지요, 영해의 물가로다. 비로소 향 사르니 굳센 혼백 의지하리라. 산 높고 물 맑으니 영원토록 변함없으리로다. 숭정 기원 후 4계축 4월 절도사 장인식 기술
 
제향사진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229-1번지